모래위키
최근 변경
최근 토론
특수 기능
파일 올리기
작성이 필요한 문서
고립된 문서
고립된 분류
분류가 되지 않은 문서
편집된 지 오래된 문서
내용이 짧은 문서
내용이 긴 문서
차단 내역
RandomPage
라이선스
IP 사용자
216.73.216.148
설정
다크 모드로 전환
로그인
모래위키
:부산역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구한말 및 일제 강점기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1951%EB%85%84_3%EC%9B%94_%EB%B6%80%EC%82%B0_%EC%A4%91%EA%B5%AC_%EB%B6%80%EC%82%B0%EC%97%AD.jpg|1951년 3월 촬영한 구 부산역 컬러사진]] [[1905년]] [[1월 1일]] [[서울역/역사#s-1|남대문]] ~ [[초량역(경부선)|초량]] 간 경부선이 개통된 뒤 3년 만인 [[1908년]] [[4월 1일]]에 중앙동 지금의 무역회관 자리에서 임시 정거장으로 개업하였다. 이후 약 97만 4천원으로 역사와 부대설비 공사에 착수하여 [[1910년]] [[10월]] 준공되었다. [[일본인]] 다쓰노 긴고(辰野 金吾)[* 그는 [[한국은행]] 구 본관, [[도쿄역]], 초대 [[만세이바시역]]도 설계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르네상스]] 양식이 유행했는데, 실제로 부산역 건축 양식은 현 도쿄역과 지금은 사라진 만세이바시역과 상당히 비슷하다.]가 설계하였으며, 구내 면적 2만 6723평, 본관 총건평 564평(약 1,863㎡)이었다. 1층에 각 대합실과 매표실, 전신실, 역원실, 화물취급실, 식당, 욕실, 화장실을 두었고 2층 위로는 철도국 직영 [[호텔]]로 사용하였다.[* 후에 호텔 객실이 부족해지자 역 북쪽에 철도국 직영 부산스테이션호텔을 추가로 건설했다.] 승강장 상옥 철골조는 한국철도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부산역과는 선로와 위치부터 달랐다. 선로는 [[중앙대로(부산)|중앙대로]]와 매우 가깝게 붙어 내려오다가 옛 부산역앞에서 약간 꺾여 현재 세관삼거리 앞에서 끝나며, 역사는 [[부산광역시|부산]] [[중구(부산광역시)|중구]] [[중앙동4가(부산)|중앙동4가]] 주부산 [[러시아]] 총영사관이 자리한 건물이 있는 블럭에 있었다. 그 주변([[중앙대로(부산)|중앙대로]]와 [[충장대로]] 사이)이 전부 철도부지였다.[* [[http://map.vworld.kr/map/maps.do#|브이월드]] [[1950년대]] 항공사진 참고.]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중앙역(부산)|중앙역]] 위치에 훨씬 더 가까웠다. 현 부산역의 위치는 당시에는 메우지 못한 바닷가였다. 현재의 부산역도 바다와 가깝지만 이 시기의 부산역도 바다와 매우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과 일본을 왕래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했고,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부관연락선]]이 그 역할을 했다. 때문에 부산 또는 시모노세키까지 열차를 타고와서 연락선으로 환승해야 했다. 그래서 배에서 내린 손님들이 기차로 빠르게 환승할 수 있도록 [[항구]] 앞에 지었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역사와 바로 옆 블록의 부산세관 사이로 기차가 지나다녔기 때문에 마치 거대한 문을 통과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 열도]]에서 [[시베리아]] 또는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는 [[경부선]]의 기점(起點)역이었기 때문에 [[도쿄역]]보다 중요하게 여겼고, 또한 경부선은[[부관연락선]]을 통해 이어지게 되는 [[산요 본선]]과 [[도카이도 본선]]의 연장선으로 보았다. 그렇다보니 한국인 입장에서는 부산 방면이 하행이지만 당시 [[수도(행정구역)|수도]]였던 [[도쿄역|도쿄]]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이쪽 방면이 상행이었다.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증언에 따르면 연락선에서 내려 열차를 갈아탔는데 [[경성부|경성역]] 방면이 하행으로 표기되었다는 것에 괴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부산부두역([ruby(釜山, ruby=フザン)][ruby(埠頭, ruby=フトウ)][ruby(驛, ruby=エキ)]; Fuzan-futō Eki, 후잔후토에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부산항]] [[부두]]와 가까워서 [[일본]]이 곡물 등을 본국으로 반출하기 위하여 바꾼 듯하다. 실제로 일본과의 연락과 공출물자 반출은 다음 역이었던 [[부산잔교역]]에서 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
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 BY-NC-SA 2.0 KR
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216.73.216.148)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사용자
216.73.216.148
IP 사용자
로그인
회원가입
최근 변경
[불러오는 중...]
최근 토론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