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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 정보 == 한양대역은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서측 부지에 있고 한양대학교 서측 역세권을 형성하고 있다. [[수도권 전철]] 최초의 [[반지하]]식 역사이다. 뚝섬역 방면 승강장은 지상역, 왕십리역 방면 승강장은 지하역의 형태이다. 내선순환 열차는 역을 빠져나가자마자 고가교에 진입하고, 외선순환 열차는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한양대 캠퍼스 지하로 들어간다. 한양대역을 기점으로 왕십리 방향 선로가 터널을 통해 한양대가 위치한 산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구조로서, 왕십리 방향 선로는 일반 지하철 구간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뚝섬역]] 방향 선로는 지상 고가 구간이다. 이 역과 [[왕십리역]] 사이에는 급곡선 구간이 있어 속도가 60km/h로 제한되어 있어 운행이 느리다. [[상대식 승강장]]이며 역의 양 끝으로 출구가 나 있어 게이트 내에서는 반대편 승강장으로 횡단할 수 없지만, 15분 안에 하차해 게이트를 찍고 나간 후 반대편 게이트에서 승차 태그하면 횡단이 가능하다. 물론 역 특성상 비상게이트도 열리므로 환승 횟수가 걸리거나 과금 여부가 못미더우면 이쪽을 이용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외선순환 쪽은 평범한 엘리베이터, 내선순환 쪽은 수직형 휠체어리프트이다. 출입구는 원래 왕십리/한양대 정문 쪽으로 1번 출입구, 뚝섬/한양대 서문 쪽으로 3번 출입구, 그리고 길 건너로 난 4번 출입구로 3개였으나, 한양대가 [[2002년]]에 캠퍼스와 직접 연결된 출구를 만들었다. '애지문'이라 불리는 현재의 2번 출입구이다. 애지문이 나 있어서 역에서 캠퍼스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물론 강의실까지는 수많은 오르막 계단(88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한양대역의 부지 내에 역이 들어선 이유로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설계 담당자(노선 전체 담당인지 해당 공구 담당인지는 불명)가 [[한양대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애교심에 학교를 위해 역을 지었다고도 볼 수 있고, 길을 따라서 노선을 건설할 수도 있었을 텐데 길을 놔두고 캠퍼스를 뚫고 선로를 놓았다는 점 때문에 한양대학교 학생들한테는 일단 이 소문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초기 계획에서는 이 역이 없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리는데, 이 역이 없어도 [[왕십리역]]을 통해 통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소문도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 전설은 진실이 아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건설 전 이미 존재했던 [[왕십리역]]이 왕십리 오거리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간 위치에 있는 이상, 환승을 한 후 최단거리로 성수 방향으로 가려면 지금처럼 한양대 정문 앞 캠퍼스 부지를 통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현재 2호선 [[왕십리역]]에서 [[한양대학교]]를 피해 도로([[왕십리로]])를 따라서 지하 건설을 하는 경우, 선형이 좋지 않은 것은 물론 왕십리역 교차로(성동[[지하차도]]) 하부 굴착이라는 난공사, 왕십리역에서의 [[막장환승]]까지 모두 감수해야 한다. 학교에서 학교부지 통과를 반대했어도 어떻게든 설득해서 부지 통과를 해야 할 수밖에 없다. 1978년에 개통된 성동지하차도는 국내에서 초창기에 건설된 지하차도라서 오래된 구조물이라 이 밑을 굴착하다가는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추후 보강 공사가 시행될 정도였다. 그래서 왕십리역 출입구 지하통로 정도는 뚫렸지만, 이 밑으로 전동차가 지나는 터널을 뚫는 것은 어렵다. 또한 2호선 구간 중 가장 먼저 착공, 개통된 뚝섬-강변 구간은 지반이 연약지반으로, 철로 아래의 도로는 하천인 성수천을 복개한 도로이다. 당시 기술로는 안정적으로 지하 구간을 공사할 수 없어서 지하로 뚫으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는데, 재정적으로 건축비용을 절감해야 하기도 했고, [[올림픽]] 유치를 위해 빨리 개통하기 위해서라도 지하 구간 대신 지상 고가철도 형식으로 건설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2호선 최초 개통 구간인 [[신설동역|신설동]]-[[성수역|성수]]-[[종합운동장역(서울)|종합운동장]] 구간 중 강북 구간 전부가 지상 고가철도로 개통된 것 또한 위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성수역]]이 이미 고가철도역으로 개통된 이상 나중에 만들어진 한양대-[[뚝섬역|뚝섬]] 구간이 중랑천 하부를 관통할 이유는 전혀 없다. 2호선 계획이 처음 나왔을 때의 일화를 보면,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구자춘]]이 도시계획과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서울시 지도를 펼친 뒤에, 매직펜으로 그려서 지금의 2호선 라인을 즉석에서 그렸다고 한다. 구자춘 시장은 [[포병]] 출신이었고, 어디에 노선을 깔아야 되는지 보는 안목은 꽤 정확했다고 한다. 거기다 뭐든 안 된다 하고 태클을 걸면 광분했던 구자춘 시장의 불 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던 도시계획과 [[공무원]]들은 구자춘 시장이 그려놓은 계획 노선도에 아무도 태클을 걸지 못하고 그대로 2호선 계획에 반영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구자춘 시장 덕분에 한양대역이 만들어진 셈이다.[*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2』, 한울(한울아카데미),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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