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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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
中央快速線
Gyeongin Line

노선 정보
분류
기점
종점
역 수
21개
상징색
남색 (#0052A4)
개통일
1899년 9월 18일(125주년)
소유자
운영사
사용차량
노선 제원
노선연장
27.0㎞
궤간
1,435mm
선로구성
복선(동인천~인천)
복복선(구로~동인천)
급전방식
교류 25,000V 60Hz 가공전차선(카테너리가선)
신호방식
지상신호방식
폐색방식
4현시 복선자동폐색방식
신호장비
ATS-S2
선로최고속도
구로 - 부평: 100km/h
부평 - 간석: 75km/h[2]
간석 - 동인천: 100km/h
동인천 - 인천: 80km/h
통행 방향

1. 개요2. 역사
2.1. 착공과 개통

1. 개요 [편집]

서울특별시 구로역인천광역시 인천역을 연결하는 총 길이 27km의 철도 노선.

노면전차를 제외한 한반도 최초의 철도 노선이자[3] 현재 존재하는 한국 철도 노선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유일하게 19세기에 만들어졌다. 고속도로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가 최초의 전 구간 개통 고속도로 노선인 경인고속도로를 제치고 고속국도 1호선을 부여받았지만, 일반철도만큼은 경인선이 1번(301)을 부여받았다. 경부선은 302번, 고속선의 경우에는 서울-인천 사이에 고속선이 없기 때문에 경부고속선이 1번(101)이다.

개통 당시에는 노량진이 기점이었으며 1900년 7월 경성까지 연장되었으나, 1905년에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구로 이북 구간이 경부선 구간에 편입되고 나머지만 경인선으로 남았다. 그 흔적은 경부선 용산 - 구로 구간 중 경부3선에 남아있는데 경부3선은 사실상 경인선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부3선을 타는 열차는 대부분 경인선 계통인 서울-동인천 쾌속/급행열차이다.

2. 역사 [편집]

2.1. 착공과 개통 [편집]

1897년 3월 22일 대한제국은 주한미국전권공사 겸 기업가인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에게 사업을 맡겨 기공하였다. 미국이 기공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대한제국 정부가 '국내철도규칙’(1896. 7. 15.)을 반포하면서 철도규격을 표준궤로 채택하였는데, 미국 철도가 표준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사업권을 가져오기 위해 대한제국 정부 조직이 매우 불안정하여 조만간에 나라로서 지위를 상실할 것이라고 대놓고 소문을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미국의 대한반도 투자를 크게 위축시켰다. 그리고 1898년에 자금난을 겪어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던 것을 당해 5월 10일에 일본의 '경인철도합자회사'가 양도받아[4] 1899(광무 3)년 9월 18일에 완공시킨다(철도의 날). 당시 일본의 철로는 협궤였기 때문에 협궤로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이미 표준궤로 공사가 진행중이었고 대륙과 연결이 용이하단 이점 덕에 협궤논의는 무산되고 계속해서 표준궤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 같아서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에서 연기는 반공(半空)에 솟아올랐다. 수레 속에 앉아 영창을 내다보니 산청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도는 듯하고, 나르는 새도 따르지 못하였다. 대한(大韓) 이수(里數)로 80리 되는 인천을 순식간에 당도하였는데 그곳 정거장에 배포한 범절은 형형색색 황홀 찬란하여 진실로 대한(大韓)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였다.

1899년 9월 19일자 독립신문

당시 노선은 제물포(현 인천역) - 축현(현 동인천역) - 우각동[5] - 부평 - 소사(현 부천) - 오류동 - 노량진이었다. 1899년 개통 당시 노량진역은 임시 정류장이었다. 이후 한강철교 완공과 함께 용산을 지나 경성까지 가는 노선이 완공되었다.

개통 당시 길이는 33.2km, 최고 속도는 30km/h였다. 모갈 증기기관차가 운행하였다. 노량진까지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으로, 표정속도는 19.8km/h였다.[6] 당시 운임은 상등석 1원 50전, 중등석 80전, 하등석 40전이었다. 쌀 한 가마니가 4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으므로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상등석이 60,000원, 중등석은 32,000원, 하등석은 16,000원 정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인천 - 노량진 구간 소요시간은 각역정차 열차로 58분, 동인천 - 노량진 구간 소요시간은 쾌속열차로 약 43분, 급행열차로 38분이고 운임은 현금으로 2,350원[7]으로 소요시간은 특급 기준 40%정도로, 운임은 하등석 기준 11%정도로 감소한 셈이다.

급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선형이 매우 좋지 못했고[8], 그래서 개통 10년도 못 된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대규모 개량공사가 진행되었다. 이 개량공사를 통해 현재의 주안 - 동인천 구간 선형이 크게 변경되었다. 미카형 증기기관차가 미국에서 직수입 혹은 일본을 통해 간접 공수되어 투입되었으며,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운행되었다.
[표준궤] 남서울철도에서 수입하여 표준궤에 맞게 설비를 개조하였다.[2] 곡선반경이 400R인 급커브 구간이다.[3] 노면전차를 포함하면 1899년 5월 20일 개업한 서울 전차가 최초다.그러나 북한에서 진남포와 평양을 잇던 55리의 협궤철도가 한반도 최초의 노선이긴 하다. 그러나 이 협궤철도는 비공식 개통.[4] 2019년에 경인선 부설권을 갖기 위해 미국과 꾸준히 합의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경인선 日완공 11년전 朝-美 논의’ 외교문서 나왔다」, 문화일보, 2019-02-13[5] 도원이 가장 가깝다. 미국 공사 호러스 뉴턴 알렌의 별장 가까이에 역을 짓는다는 이유로 선로까지 꺾어가며 지었다. 부설권이 일제로 넘어가자 존재 이유는 사라졌고 1906년에 폐역했다. 선로도 1908년에 이설하여 더 이상 역 터에 선로는 존재하지 않는다.[6] 지금은 특급 기준 48km/h까지 나온다.[7] 이 중 1회용 교통카드는 보증금 500원이 들어있다. 선후불교통카드 사용시 1,750원이다.[8] 관련 게시글, 출처: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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