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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梧柳洞驛
Oryu-dong Station
Oryu-dong Station
주소 | |||||
역 운영기관 | |||||
개업일 | |||||
1899년 9월 18일 | |||||
1974년 8월 15일 | |||||
철도거리표 | |||||
경인선 오류동 |
1. 개요 [편집]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 주막 터로 유명했던 곳
오류동역은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철도 시작을 알렸던 경인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하였다. 예로부터 서울로 가는 관문에 해당하여, 특히 주막 터로 유명했던 곳이다. <철도 100년사>에 따르면 오류동역 때문에 최초로 주모들이 시위를 주도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59년 오류동선이 준공된 후 역사 신축과 증·개축을 통해 성장, 1974년 수도권 전철 개통에 따라 새로운 선상 역사로 문을 열고 1986년 증축을 진행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여객 승강장 외에도 화물홈과 야적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현재에는 2층 선상 역사로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개방 통로를 갖추고 지역주민들의 발로 역할하고 있다.남서울철도 공식 소개 문구
2. 역 정보 [편집]
1899년부터 경인선 개통 당시부터 있었던,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역 중 하나이다. 바로 옆에 코레일 서울장비사업소가 있고 오류동역에서 분기되는 지선인 오류선이 있기 때문에 이용객의 수에 비해 역의 규모가 크다. 과거에는 철도청 중앙보급사무소도 있었는데, 오류동역 행복주택이 들어서면서 중앙보급사무소 건물과 선로가 철거되었다.
화물과 철도 운영에는 중요한 역이지만, 여객은 존재감이 없다. 급행도 통과하고, 인근에 서울 지하철 7호선 환승역인 온수역과 광명시로 나가는 버스의 터미널격인 개봉역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다.
현재의 역사는 1999년 경인선 구로 - 부평 2복선화 당시 신설된 선상역사이다. 본래는 남쪽에 1번 및 2번 출입구가 있었고 북쪽에 3번 출입구가 있었으나 오류동 행복주택 입주에 맞춰 북쪽에 행복주택과 이어지는 4번 출입구를 개설했다. 현재의 역사가 세워지기 전에는 같은 자리에 선상역사(1973년 완공, 1986년 증축)가 있어서 이곳에서 여객을 취급했고, 그 전에는 3번 출입구로 나가면 보이는, 버려진 건물이 오류동역 역사였다.
이 역은 한때 시종착 역할도 수행해서 서울시에서 발간한 서울지하철 30년사(2003)에 따르면 1979~1987년에 이 역에서 시/종착하는 열차가 있었으며 주로 서울지하철공사 차량으로 운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소수의 하행 오류동행이 있었다. 현재는 구일역 교량 개량공사 때마다 가끔씩 인천발 구로행을 오류동행으로 행선을 변경하여 운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롤지식 행선기에는 실제로 운행횟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오류동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 롤지의 마지막 판인 2003년 판에도 천안역, 덕소역과 같이 목록에 남아 있었다.
북부 출구로 나가면 걸어서 3분 거리에 바로 경인로를 만날 수 있고 부천 버스와 온수역에서 오는 서울 버스가 합류하는 첫 역인 데다가 버스 정류장도 역곡역처럼 코앞에 있기 때문에 버스 간의 환승이 용이한 교통의 요지이다.
역이 저지대에 있고 바로 옆에 오류천이 흐른다. 1990년대에 경인선 2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복개되었다고 하는데 1~2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자그마한 도로가 바로 그 흔적이다. 원래 그 도로는 주 통행로로 쓰였으나 2008년 서해안로가 생기면서 주차장으로 변했다. 오류동역과 남부순환로 사이 구간은 2000년대 후반까지 복개되지 않았으나, 바로 앞에서 설명한 서해안로 공사로 인해 지금은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장마철 집중호우가 내리면 철길이 침수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주변인들이 부르는 이름이나 마을버스 행선지 등을 보면 '동'자를 빼고 오류역으로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정식 명칭은 오류동역이다. 왜 경인선 구간 역들 중에 이 역만 '洞'자가 붙었냐면, 조선시대부터 이 동네 이름이 '오류동리'였기 때문이다.
이 역에서 단선 화물철도 노선, 통칭 오류선이 분기한다. 오류선은 사철인 경기화학선과 군용선인 옛 3군지사, 현재는 제1군지사 예하 수도군수지원단 80정비대선으로 분기된다. 경기화학선은 석포역에서 반출된 황산조차를 공장까지 반입하는 역할을 했지만 2010년을 끝으로 공장이 이전되면서 자연스럽게 폐선되었고, 현재는 3군지사선만 남아 가끔씩 군수물자가 반입되는 군용선으로만 쓰이고 있다. 2016년 쯤에 주변 역세권 개발로 노선 또한 정비되면서 근 2년간 운행 중지되었다가 최근에 재개한다고 한다. 1990년대 말 서울 지하철 7호선 2차 신규차량 반입 때에도 천왕차량기지를 드나들며 많이 사용되었다.
화물과 철도 운영에는 중요한 역이지만, 여객은 존재감이 없다. 급행도 통과하고, 인근에 서울 지하철 7호선 환승역인 온수역과 광명시로 나가는 버스의 터미널격인 개봉역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다.
현재의 역사는 1999년 경인선 구로 - 부평 2복선화 당시 신설된 선상역사이다. 본래는 남쪽에 1번 및 2번 출입구가 있었고 북쪽에 3번 출입구가 있었으나 오류동 행복주택 입주에 맞춰 북쪽에 행복주택과 이어지는 4번 출입구를 개설했다. 현재의 역사가 세워지기 전에는 같은 자리에 선상역사(1973년 완공, 1986년 증축)가 있어서 이곳에서 여객을 취급했고, 그 전에는 3번 출입구로 나가면 보이는, 버려진 건물이 오류동역 역사였다.
이 역은 한때 시종착 역할도 수행해서 서울시에서 발간한 서울지하철 30년사(2003)에 따르면 1979~1987년에 이 역에서 시/종착하는 열차가 있었으며 주로 서울지하철공사 차량으로 운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소수의 하행 오류동행이 있었다. 현재는 구일역 교량 개량공사 때마다 가끔씩 인천발 구로행을 오류동행으로 행선을 변경하여 운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롤지식 행선기에는 실제로 운행횟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오류동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 롤지의 마지막 판인 2003년 판에도 천안역, 덕소역과 같이 목록에 남아 있었다.
북부 출구로 나가면 걸어서 3분 거리에 바로 경인로를 만날 수 있고 부천 버스와 온수역에서 오는 서울 버스가 합류하는 첫 역인 데다가 버스 정류장도 역곡역처럼 코앞에 있기 때문에 버스 간의 환승이 용이한 교통의 요지이다.
역이 저지대에 있고 바로 옆에 오류천이 흐른다. 1990년대에 경인선 2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복개되었다고 하는데 1~2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자그마한 도로가 바로 그 흔적이다. 원래 그 도로는 주 통행로로 쓰였으나 2008년 서해안로가 생기면서 주차장으로 변했다. 오류동역과 남부순환로 사이 구간은 2000년대 후반까지 복개되지 않았으나, 바로 앞에서 설명한 서해안로 공사로 인해 지금은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장마철 집중호우가 내리면 철길이 침수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주변인들이 부르는 이름이나 마을버스 행선지 등을 보면 '동'자를 빼고 오류역으로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정식 명칭은 오류동역이다. 왜 경인선 구간 역들 중에 이 역만 '洞'자가 붙었냐면, 조선시대부터 이 동네 이름이 '오류동리'였기 때문이다.
이 역에서 단선 화물철도 노선, 통칭 오류선이 분기한다. 오류선은 사철인 경기화학선과 군용선인 옛 3군지사, 현재는 제1군지사 예하 수도군수지원단 80정비대선으로 분기된다. 경기화학선은 석포역에서 반출된 황산조차를 공장까지 반입하는 역할을 했지만 2010년을 끝으로 공장이 이전되면서 자연스럽게 폐선되었고, 현재는 3군지사선만 남아 가끔씩 군수물자가 반입되는 군용선으로만 쓰이고 있다. 2016년 쯤에 주변 역세권 개발로 노선 또한 정비되면서 근 2년간 운행 중지되었다가 최근에 재개한다고 한다. 1990년대 말 서울 지하철 7호선 2차 신규차량 반입 때에도 천왕차량기지를 드나들며 많이 사용되었다.
3. 승강장 [편집]
2019년 1월 스크린도어가 완공되어 가동 중에 있다.
4. 인접 정차역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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