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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釜山驛
Busan Station
Busan Station
1. 개요 [편집]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다 부산역은 1905년 1월 1일 남대문~초량 구간의 경부선 개통이 시작된지 3년 후인 1908년에 초량~ 부산역 구간이 개통되면서 1908년 4월 1일 중앙동 임시 부산 역사를 마련하여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중앙동 부산 역사는 1910년 10월에 준공되었다. 당시 역사는 비잔틴풍이 가미된 르네상스 양식의 웅장한 건물로 약한 지반 때문에 땅속 깊이 말뚝을 박아 세워졌다. 1953년 대화재로 역사가 전소되어 중앙동에 임시가설 역사를 지어 사용하다가 1969년 초량동에 새 역사를 세웠다. 현재의 역사는 경부고속철도 개통에 맞추어 2003년 9월 다시 증개축 된 것이다. 그리고 2019년, 부산역 광장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철도의 미래를 상징하는 '부산 유라시아 플랫폼'으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국가철도공단 '철도역 이야기'에서 발췌. |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정거장
2. 역 정보 [편집]
2.1. 쌍도교통 부산역 [편집]
2.1.1. 구한말 및 일제 강점기 [편집]
1951년 3월 촬영한 구 부산역 컬러사진
1905년 1월 1일 남대문 ~ 초량 간 경부선이 개통된 뒤 3년 만인 1908년 4월 1일에 중앙동 지금의 무역회관 자리에서 임시 정거장으로 개업하였다.
이후 약 97만 4천원으로 역사와 부대설비 공사에 착수하여 1910년 10월 준공되었다. 일본인 다쓰노 긴고(辰野 金吾)[1]가 설계하였으며, 구내 면적 2만 6723평, 본관 총건평 564평(약 1,863㎡)이었다. 1층에 각 대합실과 매표실, 전신실, 역원실, 화물취급실, 식당, 욕실, 화장실을 두었고 2층 위로는 철도국 직영 호텔로 사용하였다.[2] 승강장 상옥 철골조는 한국철도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부산역과는 선로와 위치부터 달랐다. 선로는 중앙대로와 매우 가깝게 붙어 내려오다가 옛 부산역앞에서 약간 꺾여 현재 세관삼거리 앞에서 끝나며, 역사는 부산 중구 중앙동4가 주부산 러시아 총영사관이 자리한 건물이 있는 블럭에 있었다. 그 주변(중앙대로와 충장대로 사이)이 전부 철도부지였다.[3]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중앙역 위치에 훨씬 더 가까웠다. 현 부산역의 위치는 당시에는 메우지 못한 바닷가였다.
현재의 부산역도 바다와 가깝지만 이 시기의 부산역도 바다와 매우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과 일본을 왕래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했고,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부관연락선이 그 역할을 했다. 때문에 부산 또는 시모노세키까지 열차를 타고와서 연락선으로 환승해야 했다. 그래서 배에서 내린 손님들이 기차로 빠르게 환승할 수 있도록 항구 앞에 지었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역사와 바로 옆 블록의 부산세관 사이로 기차가 지나다녔기 때문에 마치 거대한 문을 통과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 열도에서 시베리아 또는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는 경부선의 기점(起點)역이었기 때문에 도쿄역보다 중요하게 여겼고, 또한 경부선은부관연락선을 통해 이어지게 되는 산요 본선과 도카이도 본선의 연장선으로 보았다. 그렇다보니 한국인 입장에서는 부산 방면이 하행이지만 당시 수도였던 도쿄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이쪽 방면이 상행이었다.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증언에 따르면 연락선에서 내려 열차를 갈아탔는데 경성역 방면이 하행으로 표기되었다는 것에 괴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부산부두역(釜山埠頭驛; Fuzan-futō Eki, 후잔후토에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부산항 부두와 가까워서 일본이 곡물 등을 본국으로 반출하기 위하여 바꾼 듯하다. 실제로 일본과의 연락과 공출물자 반출은 다음 역이었던 부산잔교역에서 했다.
1905년 1월 1일 남대문 ~ 초량 간 경부선이 개통된 뒤 3년 만인 1908년 4월 1일에 중앙동 지금의 무역회관 자리에서 임시 정거장으로 개업하였다.
이후 약 97만 4천원으로 역사와 부대설비 공사에 착수하여 1910년 10월 준공되었다. 일본인 다쓰노 긴고(辰野 金吾)[1]가 설계하였으며, 구내 면적 2만 6723평, 본관 총건평 564평(약 1,863㎡)이었다. 1층에 각 대합실과 매표실, 전신실, 역원실, 화물취급실, 식당, 욕실, 화장실을 두었고 2층 위로는 철도국 직영 호텔로 사용하였다.[2] 승강장 상옥 철골조는 한국철도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부산역과는 선로와 위치부터 달랐다. 선로는 중앙대로와 매우 가깝게 붙어 내려오다가 옛 부산역앞에서 약간 꺾여 현재 세관삼거리 앞에서 끝나며, 역사는 부산 중구 중앙동4가 주부산 러시아 총영사관이 자리한 건물이 있는 블럭에 있었다. 그 주변(중앙대로와 충장대로 사이)이 전부 철도부지였다.[3]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중앙역 위치에 훨씬 더 가까웠다. 현 부산역의 위치는 당시에는 메우지 못한 바닷가였다.
현재의 부산역도 바다와 가깝지만 이 시기의 부산역도 바다와 매우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과 일본을 왕래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했고,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부관연락선이 그 역할을 했다. 때문에 부산 또는 시모노세키까지 열차를 타고와서 연락선으로 환승해야 했다. 그래서 배에서 내린 손님들이 기차로 빠르게 환승할 수 있도록 항구 앞에 지었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역사와 바로 옆 블록의 부산세관 사이로 기차가 지나다녔기 때문에 마치 거대한 문을 통과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 열도에서 시베리아 또는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는 경부선의 기점(起點)역이었기 때문에 도쿄역보다 중요하게 여겼고, 또한 경부선은부관연락선을 통해 이어지게 되는 산요 본선과 도카이도 본선의 연장선으로 보았다. 그렇다보니 한국인 입장에서는 부산 방면이 하행이지만 당시 수도였던 도쿄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이쪽 방면이 상행이었다.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증언에 따르면 연락선에서 내려 열차를 갈아탔는데 경성역 방면이 하행으로 표기되었다는 것에 괴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부산부두역(釜山埠頭驛; Fuzan-futō Eki, 후잔후토에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부산항 부두와 가까워서 일본이 곡물 등을 본국으로 반출하기 위하여 바꾼 듯하다. 실제로 일본과의 연락과 공출물자 반출은 다음 역이었던 부산잔교역에서 했다.
2.1.2. 광복 직후 [편집]
광복 이후에도 미국의 지원물자를 전국에 운송하는 창구로서 중요하게 사용되었고, 6.25 전쟁 동안에도 낙동강 전선 안쪽의 후방으로서 무사했지만 정전협정으로 끝난지 4개월 후인 1953년 11월 27일 밤에 일어난 부산역전 대화재로 불이 해안가까지 내려오면서 역사가 완전히 전소되었다. 화재 다음날 불타서 지붕이 내려앉고 벽만 남은 부산역 사진이 부산역전 대화재 문서에 있다. 역 건물은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고 철거했고 그때부터 1965년 11월 1일까지 임시역사를 사용하였다. 부산항 부두지구 구획정리사업 사전 조치 일환으로 1965년 7월 23일 초량역, 11월 1일 부산역을 영업정지하고 부산진역으로 통합 운영하였으며 1969년 6월 10일 현위치 역사가 완공될 때까지 4년여 기간동안 부산진역이 업무를 수행하였다.
1963년에 부산항 2 ~ 3부두 사이 중앙부두 뒤편에 있는 물웅덩이 주변 판자촌을 철거하여 연산동 일대로 이주시키고 매립하기 시작하였으며 1966년 4월 신축공사를 시작하여 1969년 6월 완공하였다. 그리고 중앙로 가까이 있던 철로를 매립지 쪽으로 이설하여 중앙로와 철로 사이 부지를 확보하였고 중앙로도 확장하였는데 초량역사 부지도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고 임시역사와 주변 철로도 일부 철거하여 그 부지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1969년 6월 10일 신축 역사가 완공, 종점역으로서 업무를 다시 시작하였으며 이후 여러번 증축과 개축을 거쳤다. 구 역사 사진을 보면 경사로 옆 입구 부분이 건물에서 약간 돌출되어 있는데 그 돌출부가 그 전에 있던 역사 흔적이다. 그 돌출 부분을 토대로 구 역사가 증축된 것이다.
1987년 10월 30일에 철도청 시절, JR 큐슈 하카타역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지금도 주출입구에 기념 현판이 붙어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는 러시아 철도 블라디보스토크역과 자매결연을 맺어 하카타역 현판 바로 옆에 현판을 부착해 출입구 양 옆으로 붙어 있다.
이 후 KTX 운행을 위해 역사 증축을 진행했다. 먼저 신규 역사 공사를 시작하여 2003년 완공하였고 기존 역사 개량과 승강장 공사는 2004년 4월 1일 모두 완료되었다. 이 때부터 현대적인 스타일의 현 부산역 역사가 완공되었다. 또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2차 증축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껍데기만 바뀌었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기존 역사 뒷면과 옆면에 유리를 덧붙였기 때문에 전면부 내부 구조를 보면 기존 역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답답한 콘크리트 구역을 넘어가는 순간 넓디넓은 유리궁전이 나타나는 부조화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옛 건물을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 어딘가 부조화스러운 점은 지울 수 없다. 애초에 신규로 지은 것은 2003년 완공한 신역사의 좌측 부분 뿐이며 나머지는 전부 기존 역사를 개량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북항재개발과 맞물려 지하화 소문이 퍼진 적이 있어서 2단계 계획에 변수가 되기도 했으나 선상역사로 2단계 공사가 완공되었다.
2006년 개봉한 영화 마음이 주요 배경은 밀양시이지만, 후반 부산을 중심으로 한 장면들은 거의 부산역과 광안리 근처에서 찍었다.
2017년 환승통로 공사를 시작해 상징이던 전면부 중앙 계단이 양옆으로 이설되었다. 슬로프이던 시절부터 부산역을 상징하던 구조물이자 대합실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정문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2019년 7월 1일부로 도시철도 부산역 환승통로가 완공되었다. 그리고 같은 2019년 9월 19일에 정문 앞 공간을 유라시아 플랫폼으로 재단장해 완공하였다.
1963년에 부산항 2 ~ 3부두 사이 중앙부두 뒤편에 있는 물웅덩이 주변 판자촌을 철거하여 연산동 일대로 이주시키고 매립하기 시작하였으며 1966년 4월 신축공사를 시작하여 1969년 6월 완공하였다. 그리고 중앙로 가까이 있던 철로를 매립지 쪽으로 이설하여 중앙로와 철로 사이 부지를 확보하였고 중앙로도 확장하였는데 초량역사 부지도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고 임시역사와 주변 철로도 일부 철거하여 그 부지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1969년 6월 10일 신축 역사가 완공, 종점역으로서 업무를 다시 시작하였으며 이후 여러번 증축과 개축을 거쳤다. 구 역사 사진을 보면 경사로 옆 입구 부분이 건물에서 약간 돌출되어 있는데 그 돌출부가 그 전에 있던 역사 흔적이다. 그 돌출 부분을 토대로 구 역사가 증축된 것이다.
1987년 10월 30일에 철도청 시절, JR 큐슈 하카타역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지금도 주출입구에 기념 현판이 붙어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는 러시아 철도 블라디보스토크역과 자매결연을 맺어 하카타역 현판 바로 옆에 현판을 부착해 출입구 양 옆으로 붙어 있다.
이 후 KTX 운행을 위해 역사 증축을 진행했다. 먼저 신규 역사 공사를 시작하여 2003년 완공하였고 기존 역사 개량과 승강장 공사는 2004년 4월 1일 모두 완료되었다. 이 때부터 현대적인 스타일의 현 부산역 역사가 완공되었다. 또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2차 증축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껍데기만 바뀌었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기존 역사 뒷면과 옆면에 유리를 덧붙였기 때문에 전면부 내부 구조를 보면 기존 역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답답한 콘크리트 구역을 넘어가는 순간 넓디넓은 유리궁전이 나타나는 부조화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옛 건물을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 어딘가 부조화스러운 점은 지울 수 없다. 애초에 신규로 지은 것은 2003년 완공한 신역사의 좌측 부분 뿐이며 나머지는 전부 기존 역사를 개량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북항재개발과 맞물려 지하화 소문이 퍼진 적이 있어서 2단계 계획에 변수가 되기도 했으나 선상역사로 2단계 공사가 완공되었다.
2006년 개봉한 영화 마음이 주요 배경은 밀양시이지만, 후반 부산을 중심으로 한 장면들은 거의 부산역과 광안리 근처에서 찍었다.
2017년 환승통로 공사를 시작해 상징이던 전면부 중앙 계단이 양옆으로 이설되었다. 슬로프이던 시절부터 부산역을 상징하던 구조물이자 대합실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정문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2019년 7월 1일부로 도시철도 부산역 환승통로가 완공되었다. 그리고 같은 2019년 9월 19일에 정문 앞 공간을 유라시아 플랫폼으로 재단장해 완공하였다.
2.1.3. 현재 [편집]
KTX 개통 전에는 넘쳐나는 여객열차로 부산역 북쪽, 동쪽, 남쪽 온통 모든 곳에 여객열차 편성을 유치해놓아 그야말로 온 천지에 객차들이 빼곡하여 백화점을 방불케 했다. 지금 부산진역과 부산역 사이 선로는 죄다 객차 유치용도였다. 심지어 내부에는 간이 차량사무소까지 있었다. 2004년 KTX 개통 후 객차 유치를 가야역에서 함에 따라 한동안 어떤 열차도 유치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일부 화차와 운용이 끝난 일부[4], 홍콩 지하철 동철선 및 췬완선용으로 새로 투입될 현대로템 신형 전동차 등이 빼곡히 유치되어 있다.[5]
역 2층과 3층에 간단하게 식음료 등을 즐길 수 있는 매장들이 마련되어 있다. 카카오프렌즈샵도 입점해 있으며 한정 아이템으로 역장 라이언 인형을 팔고 있다. 또한, 대합실에서 기타로 연주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나온다
부산역 근처에는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인근에 위치한 부산 러시아 총영사관의 영향이다. 아예 부산역 광장 남쪽 블록 일부는 "초량 외국인 거리"라고 조성되어 있다.
전국노래자랑 부산 동구편을 녹화했을 때 이곳 광장에서 녹화한 적이 많다. 1993년 6월 20일 방송분, 2004년 4월 18일 방송분, 2010년 1월 3일 모두 부산역 광장에서 녹화했다.
혼자서 관리역을 해먹고 있다. 부전역과 구포역이 다른 역들을 관리하고 있고, 이들이 관리하는 역 외의 나머지 부산 시내 역들은 저 멀리 부산신항역이 관리하고 있고 심지어 부산진역(경부선)도 여객 취급 중지 이후 부산신항역이 관리권을 뺏었기 때문에[6] 부산역이 관리할 역이 없다. 경부본선 종점이라서 회차나 주박 역할을 빼면 크게 중요한 일은 없는 듯 싶다.
역 2층과 3층에 간단하게 식음료 등을 즐길 수 있는 매장들이 마련되어 있다. 카카오프렌즈샵도 입점해 있으며 한정 아이템으로 역장 라이언 인형을 팔고 있다. 또한, 대합실에서 기타로 연주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나온다
부산역 근처에는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인근에 위치한 부산 러시아 총영사관의 영향이다. 아예 부산역 광장 남쪽 블록 일부는 "초량 외국인 거리"라고 조성되어 있다.
전국노래자랑 부산 동구편을 녹화했을 때 이곳 광장에서 녹화한 적이 많다. 1993년 6월 20일 방송분, 2004년 4월 18일 방송분, 2010년 1월 3일 모두 부산역 광장에서 녹화했다.
혼자서 관리역을 해먹고 있다. 부전역과 구포역이 다른 역들을 관리하고 있고, 이들이 관리하는 역 외의 나머지 부산 시내 역들은 저 멀리 부산신항역이 관리하고 있고 심지어 부산진역(경부선)도 여객 취급 중지 이후 부산신항역이 관리권을 뺏었기 때문에[6] 부산역이 관리할 역이 없다. 경부본선 종점이라서 회차나 주박 역할을 빼면 크게 중요한 일은 없는 듯 싶다.
2.2. 부산교통공사 부산역 [편집]
개통 당시의 로마자 역명은 Pusan Station도 아니고 소리 나는 대로 그대로 옮겨 적은 'Pusanyŏk'이었다. (심지어 이것도 이전 표기법인 매큔·라이샤워 기법이다.)
과거 부산역 승강장 벽면에 철도청 시절의 부산역 열차시각표가 부착되어 있었다.
부산역 광장으로 향하는 6번, 8번, 10번 출입구가 있는 부분은 계단식 화단이 조성되어 있어 화려하다. 2020년 2월 부산역 지하도 정비사업으로 6번, 8번, 10번 출입구가 폐쇄되어 에스컬레이터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2021년 4월 14일 세 곳의 출입구가 6번 출입구로 통합되었다.
2012년 8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가동중이다.
부산역 버스환승센터와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을 잇는 지하 환승통로가 새로 준공되었다. 이 지하 환승통로는 2015년 9월에 완공될 예정이었는데 (때문에 부산역 버스환승센터를 만들어놓고 다시 철거해버렸다. 자세한 사항은 부산역 문서의 환승통로 공사 문단 참고.) 12월 초순에 완공되어 버스 환승센터가 다시 개장하였다. (서울역처럼 환승센터 내부에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서면 방면 버스타는 곳 기준.)) 이 환승통로는 부산역 광장 재개발과 부산유라시아플랫폼 건설과 함께 2019년 7월 1일부로 부산역 실내까지 통로가 연장, 철도 부산역과의 환승통로가 개통되며 환승이 더 편리해졌다. 해당 건설 사업으로 버스환승센터쪽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으니, 짐이 많을 경우 이쪽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2020년 9월부터 신형 플랩식 게이트 8기를 도입해서 시범운영하고 있다. 35년이나 지나 노후화된 기존의 삼발이식 게이트를 점차 대체해 나갈 계획이다.#
경부선, 경부고속선 부산역과 연계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역이다. 평범한 상대식 승강장 역으로 빨간 벽돌과 하얀 벽돌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 경부선 부산역 덕분에 많은 버스들이 오가는 곳이라 환승하기에 더없이 좋다.
열차 도착 직후 승강장 스피커에서 다음의 안내방송이 송출된다.
과거 부산역 승강장 벽면에 철도청 시절의 부산역 열차시각표가 부착되어 있었다.
부산역 광장으로 향하는 6번, 8번, 10번 출입구가 있는 부분은 계단식 화단이 조성되어 있어 화려하다. 2020년 2월 부산역 지하도 정비사업으로 6번, 8번, 10번 출입구가 폐쇄되어 에스컬레이터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2021년 4월 14일 세 곳의 출입구가 6번 출입구로 통합되었다.
2012년 8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가동중이다.
부산역 버스환승센터와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을 잇는 지하 환승통로가 새로 준공되었다. 이 지하 환승통로는 2015년 9월에 완공될 예정이었는데 (때문에 부산역 버스환승센터를 만들어놓고 다시 철거해버렸다. 자세한 사항은 부산역 문서의 환승통로 공사 문단 참고.) 12월 초순에 완공되어 버스 환승센터가 다시 개장하였다. (서울역처럼 환승센터 내부에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서면 방면 버스타는 곳 기준.)) 이 환승통로는 부산역 광장 재개발과 부산유라시아플랫폼 건설과 함께 2019년 7월 1일부로 부산역 실내까지 통로가 연장, 철도 부산역과의 환승통로가 개통되며 환승이 더 편리해졌다. 해당 건설 사업으로 버스환승센터쪽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으니, 짐이 많을 경우 이쪽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2020년 9월부터 신형 플랩식 게이트 8기를 도입해서 시범운영하고 있다. 35년이나 지나 노후화된 기존의 삼발이식 게이트를 점차 대체해 나갈 계획이다.#
경부선, 경부고속선 부산역과 연계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역이다. 평범한 상대식 승강장 역으로 빨간 벽돌과 하얀 벽돌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 경부선 부산역 덕분에 많은 버스들이 오가는 곳이라 환승하기에 더없이 좋다.
열차 도착 직후 승강장 스피커에서 다음의 안내방송이 송출된다.
철도 부산역으로 가시는 분은 6번 출구로 나가시거나 지하상가 연결통로를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21년 9월 16일, 부산광역시가 이 역 7번 출구에 '사랑의 건강기부계단'을 개통했다. 이것은 부산광역시 5번째라고 한다. 시민 1명이 계단을 이용한다면 1명당 10원의 돈이 여기에 모이며, 결국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저소득층 환아 돕기에 사용된다. 이와 관련하여 전동차가 부산역에 접근하기 전에 연기자 고두심의 건강기부계단 홍보 방송이 송출된다. 특히 부산역에는 건강기부계단을 이용할때 스피커에서 음악이 송출되는데 전수연 피아니스트가 작곡한 Smile Smile Smile로 송출한다.
2.2.1. 역 주변 정보 [편집]
인천광역시와 함께 대한민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차이나타운이 존재한다. 90년대 한소수교 이후 러시아인이 많이 유입되어 지금은 순수한 차이나타운은 아니고 러시아 및 우즈베키스탄 등 러시아어를 쓰는 옛 소련권 고려인 쪽이 반이고 화교 및 조선족이 반쯤 되어 이태원동처럼 다소 복합적인 분위기가 나는 거리가 되었다. 과거엔 거리가 중구난방하게 난잡한 면이 적잖게 있었지만 최근에 보도블럭, 간판을 정비해 매우 깔끔해졌다. 그러나 늦은 시간대에는 분위기가 매우 으슥해지기 때문에 중국 요리나 러시아 요리를 먹으러 가더라도 주간에 가는 것이 좋다. 저녁 8시쯤부터 여기를 지나가는 남성들에게 매우 높은 확률로 할머니들이 '러시아 아가씨랑 연애 안해보겠냐', '예쁜 백인 아가씨 있다' 라는 식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늦은 야간 시간대에는 높은 확률로 러시아인을 볼 수 있으며, 러시아인 남성들이 술에 만취한 채로 괜스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간혹 폭행을 가하는 일도 있으니 조심하자. 특히 술집이 밀집된 인근의 몇몇 지역은 저녁 8시 이후로 내국인은 통행을 자제하는 것이 신변안전에 이롭다. 물론 방범용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부산동부경찰서에서 순찰을 수시로 돌기 때문에 치안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5번 출구 차이나타운 인근에는 초량 이바구길이 조성되어 있다. 6.25 전쟁 등 한국근현대사 속 이야기가 담긴 길[7]로 나훈아, 이경규, 박칼린 등을 배출한 초량초등학교가 이 곳에 있다. 비록 오르막길과 계단이 많지만 망양로 산복도로 근처 전망대에 올라가면 부산역을 비롯해서 북항 일대와 부산항대교가 한눈에 보이는데 그 경관이 정말 멋지다. 부산에 왔다면 꼭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도 서울역역(=지하 서울역)처럼 부산역역이 정식 역명이다. 나머지 역역 시리즈는 광주송정역역, 대구역역, 동대구역역이 있다. 대전역은 예외. 다만 문맥의 자연스러움을 고려했는지 차내 안내방송에서는 한국어로 '부산역'이 아닌 '부산'으로 방송한다.[8] 나머지 언어로는 차내에서도 'Busan Station'/'부산역'으로 부른다.
중앙역 방면으로 얼마 가지 않으면 영주교차로가 나오는데 우회전하면 부산터널이 나오는데 이 터널을 통과하면 동대신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단, 부산터널은 상습정체구간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대에는 오히려 지하철이 빠르다.
경부선 부산역사 방면인 6, 8, 10번 출구 일대는 노숙자가 집중되어있고, 그만큼 사이비 종교의 포교활동이 극도로 활발하다. 특히, 2019년 4월 17일 기준으로는 신천지의 활동이 확인되었다.
차이나타운쪽에 있던 빕스가 2019년 8월 31일부로 영업을 종료했다.
부산지방보훈청이 인근에 있다.
5번 출구 차이나타운 인근에는 초량 이바구길이 조성되어 있다. 6.25 전쟁 등 한국근현대사 속 이야기가 담긴 길[7]로 나훈아, 이경규, 박칼린 등을 배출한 초량초등학교가 이 곳에 있다. 비록 오르막길과 계단이 많지만 망양로 산복도로 근처 전망대에 올라가면 부산역을 비롯해서 북항 일대와 부산항대교가 한눈에 보이는데 그 경관이 정말 멋지다. 부산에 왔다면 꼭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도 서울역역(=지하 서울역)처럼 부산역역이 정식 역명이다. 나머지 역역 시리즈는 광주송정역역, 대구역역, 동대구역역이 있다. 대전역은 예외. 다만 문맥의 자연스러움을 고려했는지 차내 안내방송에서는 한국어로 '부산역'이 아닌 '부산'으로 방송한다.[8] 나머지 언어로는 차내에서도 'Busan Station'/'부산역'으로 부른다.
중앙역 방면으로 얼마 가지 않으면 영주교차로가 나오는데 우회전하면 부산터널이 나오는데 이 터널을 통과하면 동대신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단, 부산터널은 상습정체구간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대에는 오히려 지하철이 빠르다.
경부선 부산역사 방면인 6, 8, 10번 출구 일대는 노숙자가 집중되어있고, 그만큼 사이비 종교의 포교활동이 극도로 활발하다. 특히, 2019년 4월 17일 기준으로는 신천지의 활동이 확인되었다.
차이나타운쪽에 있던 빕스가 2019년 8월 31일부로 영업을 종료했다.
부산지방보훈청이 인근에 있다.
3. 승강장 [편집]
3.1. 쌍도교통 [편집]
전체 5면 12선, 승강장 5면 9선으로 2번과 7번 승강장이 없다.
부산역 배선도
1번 승강장이 상당히 유서 깊다. 1969년 관광호 시절부터 ITX-새마을 시대인 지금까지 새마을호 계열 열차만 서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무궁화호도 여기서 출발한다. 오히려 ITX는 3번 선에서 출발할 때가 더 많다. 관광호 시절부터 KTX 개통 전까지 그야말로 초초초갑부들만 타던 퍼스트 클래스급 열차인지라 계단을 이용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이고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당시 1번 개찰구는 따로 독립되어 있어 3층까지 올라가지 않는 이른바 바로타 구조였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역 귀빈 승강장도 이와 같은 바로타 구조였다. 이는 유명 인사들(귀빈) 열차를 맞이하기 위한 것. 새마을호가 가졌던 한국 최고급 열차로서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흔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리모델링과 선상역사 준공을 거쳐 1층은 상가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거쳐서 진입해야하며, 최고급 열차인 KTX는 들어오지 않고 ITX-새마을, ITX-마음과 무궁화호 일부 열차가 가끔 들어올 뿐이다.
3.2. 부산교통공사 [편집]
4. 인접 정차역 [편집]
4.1. 쌍도교통 [편집]
[1] 그는 한국은행 구 본관, 도쿄역, 초대 만세이바시역도 설계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르네상스 양식이 유행했는데, 실제로 부산역 건축 양식은 현 도쿄역과 지금은 사라진 만세이바시역과 상당히 비슷하다.[2] 후에 호텔 객실이 부족해지자 역 북쪽에 철도국 직영 부산스테이션호텔을 추가로 건설했다.[3] 브이월드 1950년대 항공사진 참고.[4] 이들 중 7181, 7182, 7188, 7308호는 보존되었으나 2022년~2023년에 고철 매각되었다. 7102, 7105, 7107, 7112, 7118, 7119, 7155, 7187, 7206, 7302, 7303, 7304, 7305호는 부산진역에서 보존되었으나 고철 매각되었다.[5] 홍콩 지하철 전동차는 현재까지 1970년대에 제조된 영국제 메트로카멜 열차를 쓰며 단계적으로 한국산 차량으로 교체 예정이다. 이미 몇몇 노선에 투입한 중국산 차량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산항을 통해 홍콩 MTR 췬완선 콰이퐁역-라이킹역 사이에 있는 콰이청 부두로 수출된다.[6] 가장 가까운 관리역이 부산역이긴 하지만 화물전용역이라서 신항역이 가져간 듯 하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북항 재개발로 인해 부산진역에서 처리할 화물이 없어짐에 따라 화물 CY(야적장)를 신항역으로 완전히 넘길 계획이 있는데, 이 때문인지 야적장 이전 작업을 앞둔 시점에 일자 미상으로 부산진역 자체가 2급 관리역으로 격상되었다. 다만 야적장 이전 이후에 화물역으로써의 용도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경우 부산 1호선 반입선로와 연계되는 신호장으로 격하시킨 후 부산역 관할로 돌아올 가능성은 있다. [7] 부산 최초의 물류창고, 부산 최초의 근대식 병원, 한강이남 최초의 교회, 168계단 등..[8] '부산, 부산 역입니다'라고 나온다. 첫 번째는 역을 붙이지 않고 두 번째는 끊어 읽는다. 반면 서울역은 코레일 전동차에서는 '서울역, 지하 서울역입니다'로 방송하고 서울교통공사 전동차에서는 '서울역, 서울역입니다'로 붙여서 방송한다. 코레일 입장에서는 지상 서울역이 자기네 관할이고 지하 서울역은 남의 관할이므로 교통공사 쪽 역명을 구별시켜 부르지만 교통공사 입장에서는 반대로 지하 서울역이 자기 관할이고 지상 서울역은 남의 관할이므로 지하 따위의 수식어 없이 그대로 그 자체가 서울역이 되는 것이다. 다만 청량리역은 코레일 전동차에서도 지하 청량리가 아닌 그냥 청량리로 부른다. 하지만 먼 옛날 이윤정 성우 시절에는 코레일 전동차도 지하 청량리라고 방송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단순 청량리로 통일된 것. 대신 서울시립대입구라는 부역명은 남의 관할에서 붙인 것이므로 부르지 않고 교통공사 전동차에서만 안내가 송출된다. 마찬가지로 다른 부역명들도 남의 관할역 부역명은 서로 불러주지 않는다.[9] 상하행이 지정된 홈만을 쓰지는 않으나, 상행 열차는 5~8번홈, 하행은 9~11을 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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