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판역
최근 수정 시각: (1개월 전)
內板驛
Naepan Station
Naepan Station
주소 | |||||
역 운영기관 | |||||
개업일 | |||||
1922년 5월 11일 | |||||
2012년 8월 10일 | |||||
철도거리표 | |||||
경부본선 내 판 | |||||
1. 개요 [편집]
2. 역 정보 [편집]
연동면 소재지에 있는 역이지만 면 인구가 2,000명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일부 리는 다음 역인 부강역이 더 가깝기 때문에 여객열차가 정차하던 시절에도 수요는 미미했다. 인근 부강역, 매포역과 달리 화물 수요도 거의 없어 1977년부터 화물 취급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1983년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된 데 이어 1997년 신호장으로 다시 한 번 격하당했다.
신호장 격하 이후에도 한동안 통일호가 정차했고, 통일호 폐지 이후에는 천안~김천 간 무궁화호가 정차하였으나 2005년 8월부터 모든 여객열차가 이 역을 통과했다.
1908년 최남선에 의해 만들어진 경부철도가에 이 역에 관한 언급이 처음 나온다. 내판역 개업은 1922년이라 어떻게 14년 전 노래에 이 역이 등장할 수 있나 싶지만 내판역의 경우 원래 계획에는 있었지만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인해 일본군에 의해 역 건설 계획이 한 차례 무산됐기 역사가 있다. 그래서 가사와 실제 역의 순서가 다르다.[1]
1948년 9월 14일 경부선 특급열차인 해방자호가 이 역 구내에서 충돌하여 미군 24명, 한국인 1명이 사망하고 1백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큰 사고가 발생했던 역사가 있다.[2]
2000년 즈음 연동중학교와 내판리를 잇는 길목에 있던 내판 건널목이 폐지되고, 내판과선교가 놓이기 전, 역 구내를 통해 면소재지로 이동하는 길이 있었다. 다만, 이 길은 도보로만 이용이 가능했다. 당연히 모든 열차가 빠른 속도로 이 역을 무정차 통과하는 현재는 흔적만 남아있고 대규모로 나무를 심어놓았기 때문에 이용할 수 없다.
2017년 6월 28일, 장욱진 화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종시문화재단에서 공공미술 작품 타일 벽화를 새로 설치하였다.
2023년 실외정원이 새로 조성되었다.
2012년 8월 10일 충청선 조치원역 - 옥천역 간 전철이 개통하며 여객운행이 재개되었다.
신호장 격하 이후에도 한동안 통일호가 정차했고, 통일호 폐지 이후에는 천안~김천 간 무궁화호가 정차하였으나 2005년 8월부터 모든 여객열차가 이 역을 통과했다.
1908년 최남선에 의해 만들어진 경부철도가에 이 역에 관한 언급이 처음 나온다. 내판역 개업은 1922년이라 어떻게 14년 전 노래에 이 역이 등장할 수 있나 싶지만 내판역의 경우 원래 계획에는 있었지만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인해 일본군에 의해 역 건설 계획이 한 차례 무산됐기 역사가 있다. 그래서 가사와 실제 역의 순서가 다르다.[1]
1948년 9월 14일 경부선 특급열차인 해방자호가 이 역 구내에서 충돌하여 미군 24명, 한국인 1명이 사망하고 1백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큰 사고가 발생했던 역사가 있다.[2]
2000년 즈음 연동중학교와 내판리를 잇는 길목에 있던 내판 건널목이 폐지되고, 내판과선교가 놓이기 전, 역 구내를 통해 면소재지로 이동하는 길이 있었다. 다만, 이 길은 도보로만 이용이 가능했다. 당연히 모든 열차가 빠른 속도로 이 역을 무정차 통과하는 현재는 흔적만 남아있고 대규모로 나무를 심어놓았기 때문에 이용할 수 없다.
2017년 6월 28일, 장욱진 화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종시문화재단에서 공공미술 작품 타일 벽화를 새로 설치하였다.
2023년 실외정원이 새로 조성되었다.
2012년 8월 10일 충청선 조치원역 - 옥천역 간 전철이 개통하며 여객운행이 재개되었다.
3. 승강장 [편집]
4. 인접 정차역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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