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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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水驛 (聖公會大)
Onsu Station (Sungkonghoe Univ.)
Onsu Station (Sungkonghoe Univ.)
주소 | |||||
역 운영기관 | |||||
개업일 | |||||
1988년 1월 16일 | |||||
2000년 2월 29일 | |||||
철도거리표 | |||||
경인선 온 수 |
1. 개요 [편집]
역곡역과 오류동역 사이 긴 거리 때문에 탄생
온수역은 1988년 1월 16일 역사 신축 준공과 동시에 경인선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기존 역곡역과 오류동역 사이의 구간이 길고, 지역 내 거주하는 지역민이 증가함에 따라 주민의 교통 편의를 위하여 추가 신설된 역사이다. 역사는 2층 건물로 366.3㎡ 규모에 61.6㎡ 부대건물을 갖춘 철근콘트리트 슬라브 건물이다. 2000년 서울 도시철도 7호선이 개통하면서 환승역이 되었으며 2012년 10월 온수역~부평구청역까지 연장 개통되었다.남서울철도 공식 소개 문구
2. 역 정보 [편집]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경기도 부천시의 접경 지역으로, 이 역에서 역곡역 쪽으로 조금 나가면 행정구역 경계선이 지난다. 이 때문에 부천시 역곡동 일부까지를 역세권으로 두고 있다.
7호선의 병기역명은 성공회대입구로 개통 이래 병기역명으로 쓰이고 있으며, 경인선에서는 부역명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 전용 정기권은 두 노선 모두 이 역까지만 유효하다. 두 노선 모두 부천시, 인천광역시 소재 구간에서는 서울 전용 정기권 사용이 불가능하다. 만약 가능하다 하더라도 내릴 때는 추가 차감되며 탈 때는 사용 불가능하다.
서울교통공사 7호선 전동차, 남서울철도, 강원철도 전동차 안내방송에서는 병기역명과 부역명 각각(성공회대입구, 성공회대)까지 방송하지만, 서울교통공사 1호선 전동차에서는 온수 역명만 방송한다.
7호선의 병기역명은 성공회대입구로 개통 이래 병기역명으로 쓰이고 있으며, 경인선에서는 부역명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 전용 정기권은 두 노선 모두 이 역까지만 유효하다. 두 노선 모두 부천시, 인천광역시 소재 구간에서는 서울 전용 정기권 사용이 불가능하다. 만약 가능하다 하더라도 내릴 때는 추가 차감되며 탈 때는 사용 불가능하다.
서울교통공사 7호선 전동차, 남서울철도, 강원철도 전동차 안내방송에서는 병기역명과 부역명 각각(성공회대입구, 성공회대)까지 방송하지만, 서울교통공사 1호선 전동차에서는 온수 역명만 방송한다.
2.1. 경인선 [편집]
경인선 개통 당시에는 없었다가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김기배 의원의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공약을 통해서 추가된 역이다.
경인선이 개통할 당시에는 역사의 위치가 지금과 달랐다. 개통 당시에는 현재의 부일로 온수역 교차로와 서울교통네트웍 온수영업소 사이에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7호선 온수역이 부지 문제로 인해 옛 온수역 역사 위치와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경인선 2복선화 사업 때문에 역사를 다시 지어야 했음에 따라, 역사를 옛 위치에서 동쪽으로 200m 떨어진 현 위치에 다시 만들었다. 현재 역사가 있는 곳은 본래 선로 부지는 아니었으나, 당시 경인선 선로가 부일로 부분에서 약간 곡선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지 그대로 역사를 지을 수 없어서 부득이 선로를 약간 남쪽으로 이설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긴 폐선 부지는 부일로를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하기 위한 부지로 편입되었다.
현재 역사와 선로 배치가 옛 역사 부지를 점유하기 때문에 옛 역사를 허물고 1997년부터 임시역사를 만들어 승강장 위치가 약간 옮겨졌는데, 성우아파트와 동진택시 사이에 있는 육교 인근이었다.[1] 이 육교에 걸친 형태로 임시 선상 역사가 있었다. 이 인근이 서울과 부천의 경계여서 당시 승강장과 역사가 서울과 부천 양쪽에 걸쳐 있었다. 하행선 쪽에 있는 옹벽에서 임시 역사 시절에 설치된 역명판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다.
역사 내 상업시설이 많은 개봉역이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오류동역과 달리 꽤 큰 데다 미관을 상당히 신경 써 건설한 티가 나는 편이다. 상업시설의 입주도 꽤 적어서 역사 내부도 비교적 깔끔하다.
경인선이 개통할 당시에는 역사의 위치가 지금과 달랐다. 개통 당시에는 현재의 부일로 온수역 교차로와 서울교통네트웍 온수영업소 사이에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7호선 온수역이 부지 문제로 인해 옛 온수역 역사 위치와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경인선 2복선화 사업 때문에 역사를 다시 지어야 했음에 따라, 역사를 옛 위치에서 동쪽으로 200m 떨어진 현 위치에 다시 만들었다. 현재 역사가 있는 곳은 본래 선로 부지는 아니었으나, 당시 경인선 선로가 부일로 부분에서 약간 곡선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지 그대로 역사를 지을 수 없어서 부득이 선로를 약간 남쪽으로 이설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긴 폐선 부지는 부일로를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하기 위한 부지로 편입되었다.
현재 역사와 선로 배치가 옛 역사 부지를 점유하기 때문에 옛 역사를 허물고 1997년부터 임시역사를 만들어 승강장 위치가 약간 옮겨졌는데, 성우아파트와 동진택시 사이에 있는 육교 인근이었다.[1] 이 육교에 걸친 형태로 임시 선상 역사가 있었다. 이 인근이 서울과 부천의 경계여서 당시 승강장과 역사가 서울과 부천 양쪽에 걸쳐 있었다. 하행선 쪽에 있는 옹벽에서 임시 역사 시절에 설치된 역명판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다.
역사 내 상업시설이 많은 개봉역이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오류동역과 달리 꽤 큰 데다 미관을 상당히 신경 써 건설한 티가 나는 편이다. 상업시설의 입주도 꽤 적어서 역사 내부도 비교적 깔끔하다.
2.1.1. 쾌속 통과 문제 [편집]
환승인원이 많으나[2] 경인선 쾌속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통과한다. 쾌속 정차역을 정할 때는 7호선 개통 전이라 환승역이 아니었고, 승하차량이 저조해서 급행 정차역으로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웃한 역곡역은 주변이 번화한 시가지인데다 배후인구도 많아 정차역의 기준인 일 평균 7만여 명의 이용객 수를 채워서 정차가 확정된 상황이었는데도 이것이 어떻게 와전된 것인지 7호선 개통전까지 한시적으로 쾌속을 역곡역에 정차시키기로 했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었다.
7호선이 개통 후 환승객들의 쾌속열차 정차 요구 민원이 빗발치자 남서울철도에서도 정차역 조정을 검토해보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온수역에 쾌속 추가 정차 또는 역곡역 대신 온수역으로의 정차역 변경은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첫째로 경인선 쾌속열차 수용 능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7호선이 부평구청역으로 연장되기 전, 경인선 쾌속의 혼잡도는 매우 높았다. 쾌속이 이 역에 정차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혼잡이 생기는 것은 명약관화했다. 경인선 쾌속은 인천과 부천의 승객들을 빠르게 서울로 실어나르기 위한 역할 외에도, 각역정차 열차의 승객을 분산시켜주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승객이 대다수인 경인선 이용 패턴을 고려하여, 2호선 승객을 쾌속으로, 7호선 승객은 각역정차로 분산시키기 위해 온수역에 쾌속을 정차시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7호선이 석남역까지 연장된 2020년대에 들어선 현재도 그때에 비해 혼잡도가 많이 감소했지만 아직까지도 역곡역 → 구로역 구간에서 상당한 혼잡도를 자랑하여 아직도 이 내용은 일부 유효하다. 어디까지나 1990년대 초에 혼잡도가 300%를 상회하던 시절보다 나아졌을 뿐, 오늘날에도 급행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승객 수가 줄었는데도 여전히 NH에조차 만차로 다니는 게 흔할 정도로 엄청난 수요를 보이며, 각역정차 또한 경부선 계통과의 중복 구간(구로~광운대)에서의 신호대기와 더불어 신도림역과 온수역에서의 승하차 지연 때문에 출퇴근시간대에는 정시운행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둘째로는 환승통로 문제이다. 위의 수용 능력 문제와 더불어 환승역이 되면서 승강장과 7호선 환승계단의 인원 수용·처리 능력이 증가한 이용객 숫자에 못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1호선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러 내려가는 계단은 두 곳뿐이고, 그것도 승강장 양끝에 있어서 병목현상이 생긴다. 인천에서 소요산 방면으로 가는 차량의 맨 앞 · 맨 뒷칸만 승객이 많다면 십중팔구 온수역에서 갈아타려는 승객들이다. 이웃한 환승역인 가산디지털단지역은 환승 통로가 독산역 방향 끝 한 군데만 있어 이 부근의 혼잡도가 엄청나다. 구로역 ↔ 가산디지털단지역 구간도 경부선의 최대 혼잡 구간인데, 환승통로가 한 쪽에만 있다보니 이로 인한 승하차지연이 엄청나게 발생한다. 이러한 일이 온수역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인천 방면에 상하행 에스컬레이터(E/S)가 설치되어 있는데 현재 일반 전동열차가 도착할 때는 비록 혼잡하지만 이용객 간 이동동선이 한 방향으로 타고 내리고 있어 지장이 심하지 않다. 하지만 급행열차가 동시에 정차하면 타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이 양쪽에서 겹쳐 승강장 내 혼잡이 심화될 수 있다. 또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승강장으로 올라오는 이용객이 승강장 내 혼잡으로 인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지 못하는데도 그 뒤에서는 계속 에스컬레이터로부터 승객이 유입되면 압박사고가 발생하거나 반대방향으로 추락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도 한다. 이 때문에 승강장, 환승통로 등을 증설하는 방안도 고려됐으나, 주변에 여유 공간이 없어 선로 이설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급행열차 통과선이 있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미 복복선화 사업을 하면서 선로를 신역사 부지쪽으로 이설하였고, 폐선 부지는 부일로를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하기 위한 부지로 편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승수요가 감소하면서 이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셋째로는 온수역 자체의 위치 및 수요 문제이다. 온수역의 위치는 서울시계로, 부천시, 인천광역시와도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인천 1호선이 지나가는 부평역과도 7정거장, 부천역과도 3정거장 차이밖에 안 나서 급행을 이용해봤자 고작 부개역, 중동역, 소사역 총 3개 역만 제낀다. 완행을 타나 급행을 타나 소요시간은 별 차이가 없어서 급행이 이 역에 서봤자 의미가 없다. 그에 따른 불필요한 혼잡을 분산하기 위해 온수역에 급행이 정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2년에 7호선이 부평구청역으로 연장 개통되면서 1호선과 평행하게 달리는 선형이 만들어져, 온수역의 환승 필요성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이를 증명하듯 부천역과 송내역의 일평균 승하차 인원이 2만 명 가량 감소하였고 부평역도 5천 명 이상 감소하는 등 온수역 환승의 주 수요였던 부천시와 인천시 이용객들이 7호선으로 갔다. 결국 남은 것은 온수역 자체의 수요가 어느 정도 되냐인데, 1호선 게이트는 1만 5천 명 정도의 미약한 역세권을 가지고 있다. 인근의 역곡역(약 6만 명)과 추가 정차역으로 지정된 개봉역(약 5만 명)에 비하면 낮은 수치이다. 그리하여 급행 정차를 요구할 명분이 사라졌다. 수요도 열세고 환승객도 줄어서, 온수역 역세권을 개발하지 않는 이상 훗날 소사역이 급행 정차역으로 지정된 후에도 이 역은 계속 미정차역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여건 때문에 RH 때의 안전사고 위험이 너무 높다는 판단과 더불어, 미약한 역세권으로 인해 승하차객 수가 기존 정차역에 비해 많이 부족하여 급행열차의 정차는 성사되지 못하였다. 한편, 역곡역은 오랫동안 온수역 급행 정차 문제가 거론될 때 함께 엮이며 사실과 다르게 매도를 당하고는 하였다. 역곡역이 승객 수요가 많고 여객 수입이 높은 곳임에도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모르던 이용객들이 임시 정차역, 구조조정 대상, 지역 이기주의 등의 취급을 하며 근거없는 비방을 한 적도 있다. 역곡역은 2023년 기준 경인선 구간에서 부천역 다음으로 이용객이 많다는 사실만 봐도 역곡역 급행 통과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개.소리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온수역이 실질적인 쾌속 중 모든 쾌속이 정차하지 않는 역 중 가장 이용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자체 승하차량 총합도 가장 많고[3], 환승객 수도 가장 많기 때문이다.
7호선이 개통 후 환승객들의 쾌속열차 정차 요구 민원이 빗발치자 남서울철도에서도 정차역 조정을 검토해보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온수역에 쾌속 추가 정차 또는 역곡역 대신 온수역으로의 정차역 변경은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첫째로 경인선 쾌속열차 수용 능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7호선이 부평구청역으로 연장되기 전, 경인선 쾌속의 혼잡도는 매우 높았다. 쾌속이 이 역에 정차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혼잡이 생기는 것은 명약관화했다. 경인선 쾌속은 인천과 부천의 승객들을 빠르게 서울로 실어나르기 위한 역할 외에도, 각역정차 열차의 승객을 분산시켜주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승객이 대다수인 경인선 이용 패턴을 고려하여, 2호선 승객을 쾌속으로, 7호선 승객은 각역정차로 분산시키기 위해 온수역에 쾌속을 정차시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7호선이 석남역까지 연장된 2020년대에 들어선 현재도 그때에 비해 혼잡도가 많이 감소했지만 아직까지도 역곡역 → 구로역 구간에서 상당한 혼잡도를 자랑하여 아직도 이 내용은 일부 유효하다. 어디까지나 1990년대 초에 혼잡도가 300%를 상회하던 시절보다 나아졌을 뿐, 오늘날에도 급행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승객 수가 줄었는데도 여전히 NH에조차 만차로 다니는 게 흔할 정도로 엄청난 수요를 보이며, 각역정차 또한 경부선 계통과의 중복 구간(구로~광운대)에서의 신호대기와 더불어 신도림역과 온수역에서의 승하차 지연 때문에 출퇴근시간대에는 정시운행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둘째로는 환승통로 문제이다. 위의 수용 능력 문제와 더불어 환승역이 되면서 승강장과 7호선 환승계단의 인원 수용·처리 능력이 증가한 이용객 숫자에 못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1호선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러 내려가는 계단은 두 곳뿐이고, 그것도 승강장 양끝에 있어서 병목현상이 생긴다. 인천에서 소요산 방면으로 가는 차량의 맨 앞 · 맨 뒷칸만 승객이 많다면 십중팔구 온수역에서 갈아타려는 승객들이다. 이웃한 환승역인 가산디지털단지역은 환승 통로가 독산역 방향 끝 한 군데만 있어 이 부근의 혼잡도가 엄청나다. 구로역 ↔ 가산디지털단지역 구간도 경부선의 최대 혼잡 구간인데, 환승통로가 한 쪽에만 있다보니 이로 인한 승하차지연이 엄청나게 발생한다. 이러한 일이 온수역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인천 방면에 상하행 에스컬레이터(E/S)가 설치되어 있는데 현재 일반 전동열차가 도착할 때는 비록 혼잡하지만 이용객 간 이동동선이 한 방향으로 타고 내리고 있어 지장이 심하지 않다. 하지만 급행열차가 동시에 정차하면 타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이 양쪽에서 겹쳐 승강장 내 혼잡이 심화될 수 있다. 또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승강장으로 올라오는 이용객이 승강장 내 혼잡으로 인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지 못하는데도 그 뒤에서는 계속 에스컬레이터로부터 승객이 유입되면 압박사고가 발생하거나 반대방향으로 추락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도 한다. 이 때문에 승강장, 환승통로 등을 증설하는 방안도 고려됐으나, 주변에 여유 공간이 없어 선로 이설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급행열차 통과선이 있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미 복복선화 사업을 하면서 선로를 신역사 부지쪽으로 이설하였고, 폐선 부지는 부일로를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하기 위한 부지로 편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승수요가 감소하면서 이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셋째로는 온수역 자체의 위치 및 수요 문제이다. 온수역의 위치는 서울시계로, 부천시, 인천광역시와도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인천 1호선이 지나가는 부평역과도 7정거장, 부천역과도 3정거장 차이밖에 안 나서 급행을 이용해봤자 고작 부개역, 중동역, 소사역 총 3개 역만 제낀다. 완행을 타나 급행을 타나 소요시간은 별 차이가 없어서 급행이 이 역에 서봤자 의미가 없다. 그에 따른 불필요한 혼잡을 분산하기 위해 온수역에 급행이 정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2년에 7호선이 부평구청역으로 연장 개통되면서 1호선과 평행하게 달리는 선형이 만들어져, 온수역의 환승 필요성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이를 증명하듯 부천역과 송내역의 일평균 승하차 인원이 2만 명 가량 감소하였고 부평역도 5천 명 이상 감소하는 등 온수역 환승의 주 수요였던 부천시와 인천시 이용객들이 7호선으로 갔다. 결국 남은 것은 온수역 자체의 수요가 어느 정도 되냐인데, 1호선 게이트는 1만 5천 명 정도의 미약한 역세권을 가지고 있다. 인근의 역곡역(약 6만 명)과 추가 정차역으로 지정된 개봉역(약 5만 명)에 비하면 낮은 수치이다. 그리하여 급행 정차를 요구할 명분이 사라졌다. 수요도 열세고 환승객도 줄어서, 온수역 역세권을 개발하지 않는 이상 훗날 소사역이 급행 정차역으로 지정된 후에도 이 역은 계속 미정차역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여건 때문에 RH 때의 안전사고 위험이 너무 높다는 판단과 더불어, 미약한 역세권으로 인해 승하차객 수가 기존 정차역에 비해 많이 부족하여 급행열차의 정차는 성사되지 못하였다. 한편, 역곡역은 오랫동안 온수역 급행 정차 문제가 거론될 때 함께 엮이며 사실과 다르게 매도를 당하고는 하였다. 역곡역이 승객 수요가 많고 여객 수입이 높은 곳임에도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모르던 이용객들이 임시 정차역, 구조조정 대상, 지역 이기주의 등의 취급을 하며 근거없는 비방을 한 적도 있다. 역곡역은 2023년 기준 경인선 구간에서 부천역 다음으로 이용객이 많다는 사실만 봐도 역곡역 급행 통과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개.소리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온수역이 실질적인 쾌속 중 모든 쾌속이 정차하지 않는 역 중 가장 이용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자체 승하차량 총합도 가장 많고[3], 환승객 수도 가장 많기 때문이다.
2.2. 서울 지하철 7호선 [편집]
서울 지하철 7호선은 1989년 당시에는 광명사거리역을 시종점으로 하였으나 1991년에 1호선 혼잡 완화를 위해 온수역으로 시종점을 변경하였다.
7호선 온수역은 2면 3선 승강장으로, 1상대 1섬형이 아닌 쌍섬형과 비슷한 형태이다. 온수역 종착 열차는 석남 방향 승강장에 정차하여 회차선을 통해 1번 승강장(장암 방향)으로 돌아 나오거나, 중간 선로로 들어와 오른쪽 문을 열어 승객들을 내린 다음 왼쪽 문을 열어 승객을 태우고 다시 출발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회차한다. 명목상으로는 출발하는 위치가 정해져있지만 바뀔 때도 허다해서 방향을 외울 필요는 없다. 현장에서는 승강장 전광판을 보고 구분할 수 있다. 만약 왼쪽이 x분 후 통과열차라면 온수발 열차는 오른쪽이다. 더 좋은 방법은 이용객들이 줄을 서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출근시간대에는 열차가 미리 들어와서 문을 열어놓고 승객들을 기다려주지 않지만 앞뒤 열차가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열어놓고 출발 대기한다. 열차시간표에 맞춰서 열차가 들어와서는 기다리는 승객을 태우고 바로 출발한다. 여기서도 앉지 못하면 고속터미널역까지 약 35분을 서서 가야 한다.[4]
2012년, 2021년, 2025년에 각각 부평구청역, 석남역, 청라국제도시역 연장 구간이 개통되었지만, 이 역에서 종착하는 온수행은 계속 유지된다. 출퇴근시간에는 대부분의 열차가 청라국제도시역에서 출발하고 청라국제도시행으로 운행되지만 평시에는 청라국제도시행과 온수행 열차가 1:1로 번갈아 운행된다.
7호선 장암 방면에는 환승띠가 존재하는데 석남(연장선) 방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특별시 디자인 가이드라인 상 환승띠는 없어져가는 추세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월 1일부터 까치울역~석남역 구간의 운영권이 서울교통공사에서 인천교통공사로 이관되면서 부천·인천 구간의 운행을 인천교통공사 소속 기관사가 수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청라국제도시행 및 청라국제도시발 도봉산행 열차의 승무교대가 이 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비상시에는 인천교통공사 소속 기관사가 신풍역까지는 운행할 수 있다고 한다. 신풍역 근처에 서울교통공사 신풍승무사업소가 있어서 평시에도 온수행 열차의 경우 이 곳에서 서울교통공사 소속 기관사들이 교대를 하는 편이다.
또한 낮 시간대와 주말 공휴일에는 청라국제도시발 포천행 열차가 아예 없거나 드물어 7호선 인천/부천구간에서 도봉산역 이북으로 가려면 이 역에서 갈아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봉산역까지 가서 갈아타야 한다.
석남 방향 기준 다음 역인 까치울역과의 역간거리는 2.2km로, 산 밑을 통과하여 경인로에서 길주로 부근까지 이동하기 때문에 역간거리가 상당히 긴 편이다. 이는 내방역~고속터미널역 구간과 함께 7호선 역간거리 중 석남역~산곡역 구간의 2.6km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거리이다.
7호선 온수역은 2면 3선 승강장으로, 1상대 1섬형이 아닌 쌍섬형과 비슷한 형태이다. 온수역 종착 열차는 석남 방향 승강장에 정차하여 회차선을 통해 1번 승강장(장암 방향)으로 돌아 나오거나, 중간 선로로 들어와 오른쪽 문을 열어 승객들을 내린 다음 왼쪽 문을 열어 승객을 태우고 다시 출발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회차한다. 명목상으로는 출발하는 위치가 정해져있지만 바뀔 때도 허다해서 방향을 외울 필요는 없다. 현장에서는 승강장 전광판을 보고 구분할 수 있다. 만약 왼쪽이 x분 후 통과열차라면 온수발 열차는 오른쪽이다. 더 좋은 방법은 이용객들이 줄을 서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출근시간대에는 열차가 미리 들어와서 문을 열어놓고 승객들을 기다려주지 않지만 앞뒤 열차가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열어놓고 출발 대기한다. 열차시간표에 맞춰서 열차가 들어와서는 기다리는 승객을 태우고 바로 출발한다. 여기서도 앉지 못하면 고속터미널역까지 약 35분을 서서 가야 한다.[4]
2012년, 2021년, 2025년에 각각 부평구청역, 석남역, 청라국제도시역 연장 구간이 개통되었지만, 이 역에서 종착하는 온수행은 계속 유지된다. 출퇴근시간에는 대부분의 열차가 청라국제도시역에서 출발하고 청라국제도시행으로 운행되지만 평시에는 청라국제도시행과 온수행 열차가 1:1로 번갈아 운행된다.
7호선 장암 방면에는 환승띠가 존재하는데 석남(연장선) 방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특별시 디자인 가이드라인 상 환승띠는 없어져가는 추세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월 1일부터 까치울역~석남역 구간의 운영권이 서울교통공사에서 인천교통공사로 이관되면서 부천·인천 구간의 운행을 인천교통공사 소속 기관사가 수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청라국제도시행 및 청라국제도시발 도봉산행 열차의 승무교대가 이 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비상시에는 인천교통공사 소속 기관사가 신풍역까지는 운행할 수 있다고 한다. 신풍역 근처에 서울교통공사 신풍승무사업소가 있어서 평시에도 온수행 열차의 경우 이 곳에서 서울교통공사 소속 기관사들이 교대를 하는 편이다.
또한 낮 시간대와 주말 공휴일에는 청라국제도시발 포천행 열차가 아예 없거나 드물어 7호선 인천/부천구간에서 도봉산역 이북으로 가려면 이 역에서 갈아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봉산역까지 가서 갈아타야 한다.
석남 방향 기준 다음 역인 까치울역과의 역간거리는 2.2km로, 산 밑을 통과하여 경인로에서 길주로 부근까지 이동하기 때문에 역간거리가 상당히 긴 편이다. 이는 내방역~고속터미널역 구간과 함께 7호선 역간거리 중 석남역~산곡역 구간의 2.6km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거리이다.
2.3. 역명 유래 [편집]
'온수역은 있는데 왜 냉수역은 없나요?'라든가 'Hot Water Station' 등의 갖가지 발언들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이 역의 이름은 '뜨거운 물'이라는 뜻의 '온수'(溫水)에서 유래했다.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이 일대에 조선 초기까지 간헐천으로 인한 온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서울 비롯한 전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이 지열로 인해 발생하는 간헐천 온천이다. 그 온천의 물이 몸이 데일 정도로 뜨거워서 이 지역의 지명으로 굳어졌다. 조선시대 이 일대의 행정구역 명칭은 부평도호부 수탄면(수곡면) 남촌 온수리였다.
세종대왕이 이 지역의 온천을 찾아가려고 하자 백성들과 그 지역 아전(향리)들이 임금이 오지 못하게 간헐천 온천을 막았다. 임금이 온천욕을 하러 오게 되면 지역에 금산이 걸려서 강제로 이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왕을 상대로 님비를 시전한 결과 온천욕을 즐길 수 없게 된 세종은 분노하였고 결국 이 지역 아전들을 고문한 뒤 이 일대를 부평도호부에서 부평현으로 2등급이나 강등을 시켰다.[5] 아전들의 행동은 '기군망상죄(欺君罔上罪)'에 해당하며, 조선시대 기군망상죄는 '반역죄'와 동급으로 처벌되었으므로 세종의 처벌은 오히려 관대한 편이었다. 이 온천 사건으로 부평현으로 강등된 상태가 유지되었다가 사건이 터진지 7년 뒤에 부평도호부로 복구되었다.
저 사건 후 수맥이 막혀서 온천이 재개발되는 일은 없었다.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군사정권 때에 이르기까지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온수동 일대의 온천을 재개발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었지만 결국 온천수맥을 찾는데 실패하면서 그 자리에 빌라촌이 들어섰다. 나중에 온천수 자체는 찾았는데, 온천 수맥이 흐르는 곳이 7호선 온수역과 가까운데 있는 데다가 온천수맥이 있는 와룡산 일대가 현재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터라 결국 현재까지 온천 개발은 감감무소식이다.
애초에 향리들이 온천을 막은 이유가 현대의 그린벨트와도 비슷한 금산이 걸리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 막힌 온천을 다시 찾아 개통하려는데 오히려 그린벨트에 묶여서 다시 개발되지 않고 있다.
세종대왕이 이 지역의 온천을 찾아가려고 하자 백성들과 그 지역 아전(향리)들이 임금이 오지 못하게 간헐천 온천을 막았다. 임금이 온천욕을 하러 오게 되면 지역에 금산이 걸려서 강제로 이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왕을 상대로 님비를 시전한 결과 온천욕을 즐길 수 없게 된 세종은 분노하였고 결국 이 지역 아전들을 고문한 뒤 이 일대를 부평도호부에서 부평현으로 2등급이나 강등을 시켰다.[5] 아전들의 행동은 '기군망상죄(欺君罔上罪)'에 해당하며, 조선시대 기군망상죄는 '반역죄'와 동급으로 처벌되었으므로 세종의 처벌은 오히려 관대한 편이었다. 이 온천 사건으로 부평현으로 강등된 상태가 유지되었다가 사건이 터진지 7년 뒤에 부평도호부로 복구되었다.
저 사건 후 수맥이 막혀서 온천이 재개발되는 일은 없었다.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군사정권 때에 이르기까지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온수동 일대의 온천을 재개발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었지만 결국 온천수맥을 찾는데 실패하면서 그 자리에 빌라촌이 들어섰다. 나중에 온천수 자체는 찾았는데, 온천 수맥이 흐르는 곳이 7호선 온수역과 가까운데 있는 데다가 온천수맥이 있는 와룡산 일대가 현재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터라 결국 현재까지 온천 개발은 감감무소식이다.
애초에 향리들이 온천을 막은 이유가 현대의 그린벨트와도 비슷한 금산이 걸리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 막힌 온천을 다시 찾아 개통하려는데 오히려 그린벨트에 묶여서 다시 개발되지 않고 있다.
3. 승강장 [편집]
3.1. 경인선 [편집]
3.2. 서울 지하철 7호선 [편집]
7호선의 1번과 4번 승강장은 청라국제도시, 도봉산, 포천 착발 열차가, 2번과 3번 승강장은 당역 착발 열차가 사용한다. 특히 4번 승강장의 경우 과거에는 천왕차량기지로 들어가는 차가 대기하던 곳이었다.
내리는 문의 위치는 석남 착발 열차는 왼쪽, 이 역 착발 열차는 오른쪽이다. 7호선 온수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도어가 닫힐 때 경고음이 추가되었다.
내리는 문의 위치는 석남 착발 열차는 왼쪽, 이 역 착발 열차는 오른쪽이다. 7호선 온수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도어가 닫힐 때 경고음이 추가되었다.
선로 구조는 기존 상선은 1번 승강장으로 그대로 들어오고 기존 하선은 2, 3번 승강장으로 들어와 중선이 되며 회차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4번 승강장의 선로는 기존 하선에서 대피선처럼 분기되어 나와 인천교통공사 하선과 연결되는 구조이다. 이 때문에 중선에 종착하는 열차는 직진으로 들어가지만 4번 승강장 착발 열차(대부분 석남행)는 곡선으로 들어간다.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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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당역종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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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접 정차역 [편집]
[1] 네이버 지도[2] 일평균 6만 명 내외이다.[3] 소사역의 서해선 이용객 통계는 서해선과의 환승인원이 포함된 수치이므로 제외[4] 출근시간대 온수발 열차의 경우 앉아서 장거리를 가려는 승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석남발 열차의 경우 더 혼잡한 대신 가산디지털단지역~대림역 구간에서 꾸준히 좌석회전이 되지만, 온수발 열차의 경우 고속터미널역까지는 가야 어느 정도 좌석회전이 된다. 애초에 온수~가산디지털단지는 10분, 온수~대림은 13분밖에 걸리지 않으므로, 이쪽에서 하차할 목적이면 이 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이상 굳이 온수발 열차를 탈 필요성이 떨어진다.[5]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84권 21년 2월 21일 5번째 기사, 90권 22년 8월 27일 2번째 기사, 92권 23년 1월 7일 1번째 기사, 92권 23년 2월 2일 3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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